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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2 오후 4:11:07 입력 뉴스 > 구정뉴스

[정동현·한끼서울] 관훈동 솥밥집



[서대문인터넷뉴스]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 (25) 종로구 ‘조금(鳥金)’

인사동 `조금(鳥金)` 솥밥

인사동 `조금(鳥金)` 솥밥

 

눈에 발이 푹푹 빠졌다. 나는 눈밭에서 허우적대는 강아지처럼 어기적어기적 걸었다. 바람에 날리는 머리가 거추장스러웠다. 머리를 잘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밭을 해치고, 추운 바람 속을 가로질러 호텔에 딸린 이발소에 갔다. 손님은 나 홀로였고 이발사도 한 명이었다.

 

눈에 내리듯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머리가 잘려나갔다.

 

이발사는 칼잡이처럼 가위질을 하다가 전기면도기를 잡아들었다. 변압기에 코드를 꽂은 모양을 보니 물 건너 온 물건이 확실했다.

 

그 전기 면도기는 미국산 바이크처럼 둔탁하고 힘 있게 진동했다.

 

“면도기가 어디 꺼죠?”

 

나는 굳이 그 면도기의 출신을 물었다.

 

“미국산입니다.”


“아, 그래요? 보통 일제가 좋지 않나요?”


“일제가 좋긴 한데, 미국산이 무게가 무겁고 잘리는 느낌이 다르거든요. 뭐, 겉멋이죠.”

 

종마의 갈기처럼 머리가 길고 윤기가 흘렀던 이발사는 ‘겉멋’이란 말에 멋쩍은 듯 웃었다.

 

나는 ‘그 맛에 일 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따라 웃었다.

 

여자가 다니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면 늘 모르는 친구 집에 놀러온 기분이 들었다. 언제나 미용사는 친절했지만 나의 존재는 축구 하프타임처럼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부록 같았다.

 

이발소는 달랐다. 넓고 편안한 팔받이와 목받침대는 어릴 적 아버지의 품을 닮아 저절로 눈이 감겼고, 무거운 전기면도기가 머리를 스칠 때면 몰래 앉아 타는 폼을 잡던 옆 집 아저씨 오토바이가 떠올랐다.

 

이발사가 거품을 볼에 묻힌 후 면도날로 구렛나루를 정리해주고 나서야 한 시간 여에 걸친 이발이 끝났다.

 

 

고기를 굽는 한 켠

고기를 굽는 한 켠

 

머리를 시원하게 자르고 밖에 나섰다.

 

바람이 짧아진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시원함을 넘어 상쾌한 쾌감이 느껴졌다.

 

그 길로 인사동에 갔다.

 

이런 날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먹고 싶었다.

 

하지만 끓이고 볶는 번잡함이 싫었다.

 

이 허공을 가로지르는 눈발처럼, 오와 열을 맞춰 깎인 머리처럼, 은빛으로 발광하는 가위 날처럼, 깔끔한 식사를 원했다. 그래서 나는 인사동 ‘조금’에 갔다.

 

안국역 지하 출구를 나와 인사동 초입 들어가는 길목에 서 있는 ‘조금’은 오래된 솥밥집이다. 도리킹이라는 일본식 참새구이집으로 시작했고 이름도 그리하여 ‘조금’이다. 아마 언제나 늘 있을 것만 같은 안심에, 들르지 않고 지나가기만 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내린 눈 때문인지, 그 작고 낡은 문을 열었다.

 

문 안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적색으로 바른 벽은 세월을 품어 높은 산에 있는 고찰 단청처럼 낮게 가라앉은 색감을 풍겼다. 문 바로 앞에 있는 화로에서는 한 남자가 부지런히 오징어를 구웠고 나이 든 주인장은 굽은 허리를 연신 펴가며 손님을 받았다.

 

 

주문을 받은 후에 밥을 앉히기 때문에 식사가 나오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주문을 받은 후에 밥을 앉히기 때문에 식사가 나오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곳에 앉아 있는 손님들도 그 주인장만큼이나 나이가 들었다. 그들은 두툼한 외투를 한 쪽에 걸어두고 아픈 무릎을 주물러 가며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 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지만 아마 그들은 긴 시간 알고 지냈을 것 같았다. 그들을 보고 시간을 느끼며 자리에 앉아 음식을 기다렸다.

 

주문을 받으면 그제야 밥을 앉히기에 금방 식사를 받기는 어렵다. 그러나 나는 휴일이었고 시간은 넉넉했으며 기분도 그러했다. 따스히 온기가 감도는 방바닥에 앉아 있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밥이 나왔다. 큼지막한 전복을 올려 지은 솥밥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쌀알이 머금은 수분과 쌀알 내외부 경계를 나누는 얇은 막 사이에는 탄탄한 긴장감이 흘러 씹을 때마다 날치알을 먹는 것 같았다.

 

한국식으로 끓인 장국으로 목을 축이며 시간을 들이고 세월을 쌓은 솥밥을 먹었다. 전복을 먹고 은행과 버섯, 살이 오른 굴을 먹었다.

 

천천히 씹고 또 마셨다. 하루는 천천히 흐르고 눈은 그날 내내 내렸으며 그곳 손님들은 오래 마주 앉아 있었다.

 

 

인사동에 위치한 솥밥 전문집 `조금` 입구

인사동에 위치한 솥밥 전문집 `조금` 입구

 

 

 

정동현대중식당 애호가 정동현은 서울에서 선택할 수 있는 ‘한 끼’를 쓴다. 회사 앞 단골 식당, 야구장 치맥, 편의점에서 혼밥처럼, 먹는 것이 활력이 되는 순간에 관한 이야기다.

 

 

 

 

편집국(sdmi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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